당인춤의 친척들

당인춤의 친척들
 
현제까지 승계되어 있는 조선통신사 전래 로 알려지는 예능은, 미에켄 스즈카시 히가시타마가키초(鈴鹿市東玉垣町) 의 당인춤과 오카야마(岡山)켄 우시마도초(牛窓町)의 카라코오도리(唐子踊) 가 있습니다. 최근, 아이치(愛知)켄 토요카와시(豊川市)에 남아있는 사사오도리(笹踊)가 춤의 동작이나 의상으로 판단하면서, 지역연구자들이 조선통신사 유래가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는데, 아직 넓게 인정되고 있지 않습니다.

 스즈카시의 당이춤은 국도23호선 근처에 있는 히가시타마가키초 (에도시대에는 토우도우번영토 이였음)에서, 4월에 고즈텐노우샤 (牛頭天王社)의 제례로서 거행됩니다. 가면을 입은 동네의 젊은이들이, 북이나 징에 맞추어 활발하게 춤을 춥니다. 당인역할을 맡은 남성은, 여성들을 놀리고나 어린애들을 놀라게 하면서 동네를 돌아 다닙니다.

고즈텐노우샤 봄축제


스즈카시의 당인춤

 기원에 대한 확실한 근거는 없고, "신편 스즈카시의 역사"라는 책에서 당인춤의 음악을 중국식음악으로 하여, "이 춤은 에도시대 중기초에 나가사키(長崎)에서 생겨, 그 후, 에도,오사카등에서 유행하고 있었던 것을 축제행사용으로 수입한 것이 아니냐"고 추리, "그 원류를 한국이나 중국으로 잦아야 할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 점, 조선통신사에 관해서는, 나팔등의 악기,의상,모자의 형태가 츠시의 당인춤과 비슷한 점, 그리고 민족음악학자인 쿠사노타에코(草野妙子) 무사시노음악대학 교수의 지적처럼, 음악적으로 조선음악의 영향을 볼수 있기 때문에 영향의 크기가 추측 됩니다. 1997년에는 미에켄 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오카야마켄 우시마도초의 카라코오도리는 조선통신사가 통과한 항구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소학교의 교과소에서도 사진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정전에는 츠시의 당인춤이 "토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선출병에 유래 한다"고 설명하고 있었던 것 처럼, "진구우(神功)황후의 조선출병 에 유래한다"고 기원을 해석하고 있었으나, 현제는 동네 교육위원회도 원조하면서, 조선통신사 유래의 민속예능으로서 보존 하고 있습니다.

우시마도 가을 축제

오카야마켄의 카라코오도리

 이 카라코오도리는 생생한 색채의 의상을 입은 2명의 남자가 목말을 타고 동네 신사에 가서, 작은 북이나 피리, 의미불명의 노래 에 맞추어, 춤추는 것입니다. 10월의 제례에서 피로될 카라코오도리는, 중국기원설을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으나, 조선통신사일행의 아동춤이 그 기원이라는 학설이 유력합니다. 그리고 우시마도초에서는 해유관(海遊館)이라는 이름으로 조선통신사와 동네의 단지리축제를 소개하는 자료관을 상설하고 있으며, 언제든지 볼수 있습니다.

 이상, 현제에도 보존되어 있는 조선통신사 유래의 전통예능을 소개했습니다. 또 에도,카나자와,나고야,카와고에(川越),츠치우라(土浦),와카야마(和歌山), 토토리(鳥取),니노미야(二宮)등에서 당인춤이란 명칭의 예능이 있었던 것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욕심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 당시의 행열의 상황을 가장 잘 제현하고 있는 것은, 츠시 와케베초의 당인춤이다 라는 것입니다. 행열의 정사인 대장이 있으며, 정도기등의 깃발을 갖고, 많은 인원수로 돌아다니는 스타일은 우리 당인춤 뿐이며, 조선통신사 의 그림과도 닮은 점이 많습니다. 최근, 매년11월에는 조선통신사 와 관계있는 지방자치체등이 모이는 "조선통신사연고지연락협의회" 에서 항상 그 당시의 행렬을 제현해 달라고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통신사가 통과하지도 않았던 츠에서, 왜 이러한 형태로 남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문헌사료도 많지 않아, 확실히 알수 없고, 향후의 과제입니다.


당인의집